- What my heart wants to say -

말 더듬는 가수.
아직 우리 나라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가레스 게이츠를 소개할 때 줄곧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영국 팝 음악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가레스 게이츠.
오늘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한 목소리를 갖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4월 어느 날이었더라. 라디오 광고방송을 듣던 중에 ‘18세의 차세대 팝 아이콘’이라는 멘트와 Anyone Of Us(지금은 꽤 많이 알고 있는 곡)의 한 소절이 흘렀다.

그리고 다음 날, 15초 라디오 광고에서 흐르던 노래 한 소절을 하루 종일 흥얼거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바로 CD를 사버렸다. CD를 살 때 유난히 신중을 기하는 나는 1번 트랙을 들으면서부터, 무모했을지도 모를 선택에 대한 걱정을 뒤로해야 했다. 감미로운 목소리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라고 느낄 정도로 영화 ‘사랑과 영혼’의 주제곡 Unchained Melody를 완벽히 소화한 가레스.

어려서부터 말더듬이라고 하는 유창성 언어장애를 갖고 있던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단연 말이 없는 조용한 아이였고 여덞 살 때 학교 뮤지컬 공연 오디션을 볼 때까지만 해도 노래를 불러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단역이 맡게된 그는 자신의 보컬파트에서 노래 한 소절을  부르는 순간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소통이 힘들 정도로 말을 더듬는 꼬마아이가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말더듬 증상은커녕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미성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었다. 선생님은 바로 그에게 주인공 역을 맡겼고, 학예회가 열리기 하루 전까지 가족들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결국 공연이 열리던 날 맨 앞줄에 앉아 가레스의 노래를 듣던 그의 어머니는 공연 내내 눈물을 흘리셨다. 8살 짜리 아직은 너무 어린아이가 언어적 부족함을 갖고 너무 일찍 세상의 벽에 부딪치게 되어, 그 작은 입을 꼭 다문 채 가슴속에 상처만 키워 가진 않을까 걱정만 담고 살던 지난 시간들도 함께 흘려 보내셨던 것이다.

그 후 가레스는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꾸준히 키워나갔다. 그리고 12살이 되던 97년, 그가 성가대 활동을 하던 브래드퍼드 성당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서 가레스는 훌륭하게 독창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기타와 피아노를 배워가며 장차 싱어 송 라이터 겸 연주인으로 거듭날 초석을 다지던 그는 여동생과 함께 ‘팝 아이돌(Pop Idol)’이라는 공개 오디션 TV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음악인생을 꽃피울 첫 테잎을 끊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그에게 전국 시청자들의 지지는 높아져갔고, ‘팝 아이돌’에서 당당히 2등을 차지하게 되었다. 무대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데만도 5분이 넘게 걸릴 정도로 심한 언어 장애를 갖고 있지만, 틴팝(Teen Pop)의 대부 사이먼 코웰(Simon Cowell)은 가레스의 아름다운 미성에 감동하여 러브콜을 보냈다.

그렇게 4백만장이 넘게 팔린 싱글 앨범이 나오고 얼마전 선보인 그의 첫 앨범 “What My Heart Wants To Say”는 영국 국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내 마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 이라는 제목의 타이틀 곡은 가레스가 직접 작사에 참여해 팬들에게 말로 하지 못하는 그의 마음을 담아 화제가 된 곡이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 전 한국을 찾은 그. 그리고 그의 싸인회를 찾았던 나.
고등학교 2학년이나 돼서 연예인을 보러 다닌다는 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중압감을 뒤로 한 채 첫 차를 타고 올라가 8시간이 넘도록 기다릴 수 있었던 용기가 어디서 났었는지...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다신 보기 힘들지도 모를 영국 TOP스타의 싸인회였으니, 그리고 내가 달아준 명찰을 가슴에 달고 있는 그의 사진 몇 장을 얻었으니.

아침 7시 코엑스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함 속에, 줄지어 앉아있는 50명 남짓한 인원으로 시작되었다. 점점 북적대는 인파 속에 오후 3시가 훌쩍 넘은 어느 쯤, 청바지에 흰 티로 깔끔하고 단정하게, 정말 18세 소년의 모습으로 등장한 영국의 TOP스타는 해맑게 웃으면서 그래도 Hello 한 마디 없이 자리에 앉았다. 500번이 넘는 순서표 중에서 59번이었으니 얼마 안가 그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근데 정작 가레스 앞에 섰던 순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친구가 사진을 찍어주는 동안 가레스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명찰을 달아주느라 정신없었으니...고개를 들어서 얼굴을 볼 걸 그랬다. 나름대로 계획한 일이 있었지만 귀에서 울리는 주위의 함성소리와 대형스피커에서 흐르는 가레스의 노래...그 정신없는 속에서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었으랴. 벌써 한 달이 훨씬 지났음에도 청바지에 흰 티 입은 그 외국 소년의 순수한 미소에 물들어 늘상 회상에 젖곤 하는 필자는, 몸을 일으켜 그를 봤을 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Thank you를 말하던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올 수 있었음에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지금도 가사를 잊어 먹을까봐 앨범 전곡 가사를 종이에 적어 항상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가레스. 작은 인터뷰 하나에도 미리 질문지를 받아 답변을 준비해야하는 상황이지만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고, 그러면서도 장애를 극복한 성공담에만 초점이 맞춰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남들보다 더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그저 맑은 미소 하나로 충분히 표현되는 것 같다. 그의 앨범을 산 후로 두 달이 넘도록 CDP에 가레스 게이츠 CD만 넣고 다녔던 내게, 그는 계속 듣고 싶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유창한 말소리를 원하는, 감미로운 목소리를 갖고 있는 한 아이의 파란 꿈들이 꼭 하늘을 날 수 있길 바래본다.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만큼이나 따뜻한 미소 역시 언제나 잃지 않는 사람이 되길...                                               

 (최아람 기자 가평종고)